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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이야기 1부 : 그 여름날의 기억

julio22 2014. 8. 13. 17:51


노근리 이야기 1부 : 그 여름날의 기억 (2014/08/13)

정은용 원작,박건웅 만화 | 새만화책 | 초판 1쇄 2006.11.20


분명 전에 이 만화를 읽었는데 이것부터 오류가 발생했다.다. 봤다고 해야 했을까? 2부 출간을 보고 1부를 재독해보았는데, 612페이지의 두꺼운 책인지 기억 못했다. 굴다리와 노근리학살사건 상황일지(그림포함) -책 마지막에 펼쳐지면 긴 면이 되는, 컬러 그림으로 개요가 적혀 있다.


기억은 있는데... 은용씨와 선용씨가 만나는 것으로 끝이었다. 다시 보니 노근리에서 일어났던 일이 정말 상세히, 목격자의 증언과 함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가슴이 먹먹하고, 비참하고, 지금에 태어난 것을 감사했고, 끝까지 살아 남아 대를 이어라 했던... 그 처럼 나흘 간의 기록은 진정 슬펐다. 왜 뒤틀린 기억을 갖졌지? 다행히 지금이라도 제대로 정리했음에 감사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사아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알론 칼손 할아버지)" 이 영화로도 나와 잠시(?) 봤는데 책이 주는 감동은 전혀 달랐다. 옆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스티그 라르손씨의 "밀레니엄"을 원작으로 읽어 봐야지 했다. 영화의 표현은 책의 절반도 안되는 것 같다. 폄훼하는게 아니라 그만큼 쟝르의 구별이 필요함을 알려드리고 싶다.

그렇게 마블 만화책 내용을 영화로 했을 때 좋았던 것 것처럼 이 만화들이 영화화 된다면, 어제 읽은 <짐승의 시간>도 그렇고 더 낫겠다 싶다. 짐승의 시간은 <남영동 1985>로 영화화 되었군! ^^; 한번 봐야지! 판화처럼 그린 <만화 짐승의 시간>은 큰위안과 동시에 큰 용기를 지닌 김근태씨를 추모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같은 저자의 그림인데, 역시 다르다. 판화 기법(이렇게 말하는게 맞는 모르지만)의 <짐승의 시간>과는 달리 이 책의 그림은 흰색 바탕의 노근리 이야기와 검은색 바탕의 역사 이야기를 기준으로 숨가쁘게 기술한다. 아니지, 학살이 진행된 그 시간은 그렇고, 나머지는 노근리의 밖에서 보는 6.25를 보여주고 있다. 정확히는 돋보기 모드로 만 봤는데, 돋보기를 치우고 큰 조망을 해본 건 나에게 좋은 일.


전에 읽을 땐 노근리 이야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제는 6.25란 큰 틀에서 볼 수 있어 더 다른 느낌이다. 적이 아닌 (미군 전투기 폭격과 기관총 살포 등등)에 학살 당한, 7월25일 부터 29일의 4일간 사상자가 400명이라는 보도가 있긴 한데, 더 많을 수 있겠다. 그땐 주민등록이 없었으니까!



6.25란 큰 틀에서 보니, 자주 국방이 중요하다!



줄긋기

이승만 하면 치가떨리는 분이 많던데, 이런 이야기를 적어둬야겠다. '서울을 사수하자'라는 이승만 육성 방송이 서울 시가지에 되고 있었는데, 6.27일 그러니까 6.25 새벽 4시 이후 이틀 만에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부 요인이 대전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개새끼란 말이 나올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를 보자! 정부가 하는 일이 이때와 똑같지 않은가? 선동하려는게 아니라 만화를 보고 있다가 전에 없던 정부에 대한 분노는 분명 그들이 잘못하고 있던 세월호 관련 조치다. 아직도 바뀐거나 개선한건 없다. 한가지,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버스 입석 금지... 아흐!


7.7 유엔군 창설, 맥아더 원수 임명

7.13 미8군 대구 이동

7.14 UN 파병 요청

7.15 미25사단 오사카에서 부산으로

7.20 오후 6시 대전 방어선이 무너짐.

7.22 미 1기갑 부산으로


공비한테 죽고, 전쟁에서 죽고, 저런 일로 죽고 ... 백성들이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졌기에 이토록 저주를 받는지 ...쯧쯧. -169 => 은용씨가 피난 중에 한 밤 신세지는 농가의 할아버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 우리 시민은 정말 착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투표를 하니 새누리당이 득세하는 것이겠지만!


콘크리트 쌍굴은 내부 둥근 천장의 높이가 10.5미터 각각의 폭이 7미터 길이가 24.5미터 정도였다. 쌍굴 안으로 냇물이 흘렀으나 동쪽 굴로 지나갔고, 서쪽 굴로는 조금만 졸졸 흘렀다.-352


3일의 학살로 살아남은 사람은 25명 정도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