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o@fEELING

피로사회 - 열심히 했는데, 더 힘들어진 삶. 자기착취 본문

感 Book

피로사회 - 열심히 했는데, 더 힘들어진 삶. 자기착취

julio22 2014. 7. 20. 00:26

피로사회 Müdigkeit Gesellschaft (p128) (2014/07/19)

한병철 지음/김태환 옮김 | (주)문학과 지성사 | 2012.10.12 초판 제15쇄 1쇄 2012.3.5

 

_______

2021/03/24

 

다행히 코비드19 시대라면, 하튼 저자에 경도되지 말지어다! 내가 읽었던 2014년 이야기는 울림이 컸지만 지금은?

 

다행이다. 시작이 신경성 폭력이고, 그 문두에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그래서 이를테면 박테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적어도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인플루엔자의 대대적 확산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하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제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따라서 타자의 부정성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면역학적 기술로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다.

 

==> 예전에 읽을 땐 아무 의심 없이 넘긴 대목인데, 다시 읽는데, 처음부터 동의 못하는 대목이 됐다. 나자신의 앎이 깊어져 그런게 아닌게 아이러니 하지만, COVID-19시대에, 그리고 저자는 철학자인데 의사도 아니면서 왜 이런 말을 의심없이 받아들여 세뇌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_______

2014/07/19

투명사회를 빌리면서 눈에 띄였다. 빌릴까 말까 했는데, 15쇄가 찍힌 책인데 읽어봐야지! 능동적. 문고판 크기에, 페이지도 적은게 한몫. 장하준씨의 사다리 걷어차기도 그랬던 것 같은데, 저자가 한국인임에도 본래는 원판은 독일판이고, 그것을 번역한 사람은 서울대 교수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그 외국어로 책 정도는 낼 수 있어야 되는 수준(내가 가진 기대치!)인가?! 금속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가 현재는 조형예술대학 교수일을 하고 있는게 신기하기도 했다. 다들 안다. 전공과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

 

기반 지식이 없이 경쾌하게 읽기로 ...

 

면역이란 단어엔 꽂혔다. 다윈의 [종의 기원] 근처를 기웃거리면서 흥미진진했던 생물학 관점까지 엮어지고, 비유한 컴퓨터 시스템의 바이러스 연관된 이야기는 그쪽 숙련공인 나로서도... ... ... 그러고 보니 뉴튼의 작용과 반작용과 직빵 연결. 그렇게 과학은 철학과 동떨어진 녀석이 아님을 다시금 내게 상기시킨다.

 

** 독일어 Müdigkeit 뜻이 피로란 뜻도 있지만 권태란 뜻도 있었다. /네이버 사전 검색 결과/

 

신경성 폭력.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면역 방어의 대상은 타자성 자체이다.

이질성. 타자성.

모든 면연 반응은 이질성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Roberto Esposito의 면역성 이론이 역시 잘못된 가정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보드리야르는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비만 상태"를 지적하기도 한다.->난 비만을 과잉상태로 생각했었는데...

 

스스로의 내부를 지닌 면역학적 주체는 아주 적은 양이라 하더라도 이질적인 것에 저항하고 그것을 밖으로 밀어낸다.

 

적대적 바이러스는 시스템에 침입하고, 시스템은 면역체계처럼 작동하면서 침입해온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것이다.

 

비유적인 소설로 읽었다. 기반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래도 지겹지 않고 재미난 것이 다행이고, 그렇기에 제법 많이 읽었던 것 같다. (1판15쇄) 2012년 독일이면 나름 잘나가고 있고, 외부 이민자가 많아져 고달파하고 있는 시기 아닌가? 그런 외적 상황을 상상(사실 아님)하면서 읽으니, 앗참 거기다 저자 역시 타자성을 가진 한국인이니 만큼... ... ... 그의 소감이 독일인 입장에선 신선하고 유익한 그 무엇으로 규정됐을 수 있겠다.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푸코의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니다.-> 아 배경지식이 없으니 한없이 작아진다. 그냥 푸코가 한 이야기는 현재와 맞지 않다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

 

알랭 에랭베르는 우울증을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이행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규정한다.

 

성과를 향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을 초래한다.

실제로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은 과도한 책임과 주도권이 아니라 후기근대적 노동사회의 새로운 계율이 된 성과주의 명령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와 장에서 말한 면역학과 이어진다. 단락적이지 않고 이어진다.

 

깊은 심심함.

멀티태스킹은 후기근대의 노동 및 정보사회를 사는 인간만이 갖추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활동적 삶.

한나 아렌트는 '활동적 삶'이라는 책에서 사색적 삶을 우위에 놓는 전통적 입장에 맞서 활동적 삶의 가치를 복구하고 그 내적 다양성을 새롭게 표현하려고 시도한다.

활동적 삶으 전통적으로 단순히 조급함, 여유 없음으로 부당하게 폄하되어왔다.

행동의 영웅성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낳는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에 동의하지 않으며 노동사회는 개별화를 통해 성과사회, 활동사회로 변모했다- 이야기 한다. 

 

탈서사화는 삶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만든다. 노동 자체가 적나라한 활동이다. - 인생학교 |일|을 읽어보면서 생각해봐야겠다. 일과 직업은 다른 개념! 정도만 숙지해둬야지!

 

호모 사케르의 삶보다 더 많이 벌거벗겨진 것은 오늘의 삶이다. -> 인터넷시대의 힘은 모르는 정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모두가 자유롭고 빈둥거릴 수도 있는 그런 사회로 귀결되지 않는다... 주인 스스로가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를 낳는다. ... 그렇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해야 된다. 아니지 사유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우는 것이겠지! 생각 구두쇠는 되지말자!

 

보는 법의 교육.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교육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 가지 과업을 거론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자극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 자극에 대해 아니라고 대꾸하지 못하는 것.

사색적 삶의 부활.

니체가 말한 "중단하는 본능"... 자극과 반응 사회에 판단이란 주체적 활동이 들어가야 하는 건 '일곱가지 습관'에 나온 이야기.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공포가 특정한 대상에 관한 것이라면 불안은 존재 자체의 문제이다. -> 최근에 읽은 인생학교 |돈|에서 말한 문제와 걱정보다 명쾌한 이야기.

 

바틀비의 경우.

 

피로사회.

활동사회라고도 할 수 있는 성과사회는 서서히 도핑사회로 발전해간다. 그 와중에 '브레인 도핑'처럼 부정적인 표현은 "신경 향상"으로 대체된다. 도핑은 말하자면 성능 없는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생동성Lebendigkeit

성과사회, 활동사회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이게 저자가 '피로사회'란 제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인가? 난 비약적이고 일차원적으로 현대미포조선에서 일하는 용접공을 하는 지인이 떠올랐다. 직업만 연결하는 것이고 그 친구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사시를 준비하다 ... 꼬여버렸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삼성중공업에서 1년 컴퓨터숙련공으로 일한 나를 포함해 연결된다. '돈내기'의 천국인 그곳은 어떤 사회였을까?

저자는 이어서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66 로 말한다. 그렇다. 정직원과 비정규직 일당제과 구성되어 있는 그곳은 개별화되고 고립화 되어 있긴 했다. 글쓴이와 다른 의미일 수 있겠으나... 저자는 이쪽에는 나의 피로가, 저쪽에는 너의 피로가 있는 꼴이었다로 표현하던데, 제조업이 성숙한 독일인들도 그래서 많이 읽었을 수도 있겠다.

저자는 피로는 폭력이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을,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로 전개한다. 밤늦게까지 아니 정확히는 새벽녘까지 여는 술집 노동자를 보노라면... 완전공감된다. 물론 늦게까지 마신 적이 거의 없어 상상적 공감이겠으나! 24시간 편의점 알바생의 글을 만나다보면 감정이입이 안될 수 없다. 흥미진진한 한편의 재미난 단편소설. 하지만 꼭 피로를 육체적인 것으로만 한정지어 이야기하지 않았다.

 

_______

우울 사회.Gesellschaft der Depression

 

"신들은 지쳤고 독수리도 지쳤으며 상처도 지쳐서 저절로 아물었다." 카프카의 프로메테우스 재해석이라는데 ... 정말 흥미로운 해석.

와! 잉여란 단어를 만나 좋네!

경험은 이화적ver-ndernd이다. 체험은 동화적ver-gleichend으로 작용한다.

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수준에 이르면,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이 된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burnout 될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생존을 절대화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관심은 좋은 삶이 아니다. 이 경제는 더 많은 자본이 더 많은 삶을, 더 많은 사람의 능력을 낳을 거라는 환상을 자양분으로 발전한다.

건강은 자기 관계적으로 되며 목적 없는 공허한 합목적성으로 전락한다. - 아침 수영의 의미를 이렇게 곡해한 해석이 될 수 있다니... ...

 

느낌만 받은 것 같다. 프로이트로 설명을 하시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