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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을 넘어서 – 과정 보기의 진수 본문

이분법을 넘어서 – 과정 보기의 진수

ikoob 2008.02.16 14:11

이분법을 넘어서 (2008/02/16)
장회익,최종덕지음|한길사|2007.12.20|ISBN 9788935658664 (03110)

책 인연/
서가에서 한 권, 한 권 빼보고 이게 맞겠다 싶어 구매하는게 완독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 링크, 클릭을 통해 구매하게 되면, 꽂아만 두는 책도 여럿 생기게 된다. 하지만, 대화를 적어둔 책이라 머뭇거리지도 않고 카트에 집어 넣었다.  대화는 지금까지 나에겐 잘 맞았다. 과정을 보여주는 텍스트가 귀하기 때문에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한 권을 통해 고전역학, 일반/특수 상대성이론, 전체와 부분, 동양과 서양, 의식과 마음 그리고 양자역학까지 전부 읽는 이가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한  독후감은 아니다. 겸손이 아니라 읽었다고 다 이해했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변명으로 시작했을 뿐이다. 단지, 고등학교 때 배운 물리,지구과학,생물,화학을 통합적인 이해를 좀더 하고자 잡았을 뿐!


들어가면서/
표피적 이해만 했을지 몰라도 어렵게 넘기기 보단 쉽게 줄긋기 하면서 읽었다. 깨끗하게 그을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게 돈주고 책싼 혜택이기도 하다!  예전 처럼 긴 시간을 내어 읽기 보다는 단시간 완독을 목표로 읽기는 오랜만 인 듯 하다. 여섯 권인가를 같이 주문했기에 읽고 싶은 책이 많았지만, 우선 완독하려고 바둥거려 성공한 책이다. 그래도 10일은 넘게 걸렸다.(설 연휴에 다른 목표때문에 더 걸린 듯.) 읽은 날짜로는 4일정도. 컨버전스의 의미를  잡아볼 수도 있겠다. 더하기 사고가 아닌 곱하기 사고 말이다.

저자들의 학문 길을 따라가 보는 것은 정말이지, 전공을 선택하고자 하는 고등학생에게 읽어보길 권할 정도다.

여담으로 최재희 선생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강의에 대해 조금더 말씀드릴까요? 선생님은 [순수이성비판] 독일어 원본을 놓고 강의하셨어요. 나는 공고를 졸업했기 때문에 독일어를 전혀 배우지 못했고 대학에서도 입문 과목 겨우 두 학기를 배웠기 때문에 어디 따라 읽을 수가 있나요? 다행스럽게도 진도가 얼마나 늦은지 본문은 고사하고 서론조차 들어가지 못하고 겨우 서문을 절반 정도 읽고 한 학기가 끝난 거예요. 그리고 학기말 시험이 다가왔는데, 생각해보니 결국 그동안 읽은 독일어 원문을 주고 번역하라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선생님을 찾아 갔어요. 제가 이 강의를 들은 것은 칸트의 시간공간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시간공간 이론의 차이를 알고 싶어서였는데,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끝날 듯하니 이것에 대해 제가 공부해 보고서를 내겠노라고, 학기말 시험은 이것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 … … 나중에 성적 결과를 보니까 철학과 학생들을 다 제쳐놓고 최고점을 받았더군요… p26-27

그리고, 최종덕 교수 처럼 고등학교때 부터 환경에 관심이 있었단 이야기는 정말 귀 기울일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물 리학에 관심 많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좀더 아는체(?) 할 수 있는 그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고 했다. 사실 책이란거 읽고 나서 약간은 지적 허영일지 모르나 현학적이 되는 것도 그리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또, 과학철학 토마스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아직도 읽고 있는 책)]를 읽은 독자에겐 재미난 썰에 동참할 무언가를 얻기도 하지 않을까! 사실 읽고 무심히 넘어간 부분에 해제가 있어 좋았다.


본론/
내용은 책을 읽어 분명히 하는게 낫겠다. 과정을 보여주는 책의 큰 난점이 이것이다. 가름을 하고 적다보면,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여지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도 구절은 옮길 생각이다.) 흥미로운 건, 현재까지 내가 관심 있어 했던 주제를 모두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진 궁금함은 태극에서 음양이 나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컨버전스의 의밀 이 복잡한, 배워야할 지식이 싼더미 같은 이시대에도 몰랐던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정도 이다. 양이란 것과 질이란 것은 저울로 잴 수 없는 다른 속성임을 다시금 알게 된다.

– 나에겐 지식이 아닌 지혜가 필요한 게야!
– 대화의 사실판단, 분석없이 그냥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바탕의 실력 없습니다.
– 관념적 이해는 조금이라도 가능하나 여기서 말하는 수학적 기반하에 이해는 아직도 요원할 뿐이다!
–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에게와 꽃이되던, 사실이 되던, 본질이 되던 내것 소유 이상의 그 무엇에 나아기 위한 노력.
– 동양과 서양이란 주제는 예전에 읽은 [생각의 지도(클릭) ]과 연결해 이해가 쉬웠다.


줄긋기
우리가 흔히 배우는 과정에서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게 있어요. 배우는 사람 곧 내용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머리를 백지로 가정하고 배움이라는 것은 그 위에 글씨를 써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 이것은 누구나 공유하고 있으니까 이해의 바탕을 고려하지 않고 … -p35
=> 배움의 과정이 선형적이지 않다. 비연속적이고, 계단그래프이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이 말하는 소위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것은 실은 이것, 즉 이해틀의 변화를 말하는 것인데..-p36

과학을 가르칠 때 역사적 단계를 밟아서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역사적 단계를 밟는다는 것은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밟은 길을 따라가면서 공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엄청난 우회로입니다.-p42

교사가 모든 것을 다 알고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과 오늘의 관점에서 고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어떤 이론의 창시자가 그것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신화를 버려야 할 때라고 봐요. 대표적인 예가 통계역학이에요. 클라우지우스(Clausius)가 엔트로피 개념을 창시했지만 그의 엔트로피 개념처럼 모호하고 이해하기 힘든 게 없어요.-p44

물리학은 경험과학이고, 수학은 형식과학이라고 말합니다. 즉 경험과학이란 천체세계에서부터 우리의 감각세계 및 원자세계에 이르기 까지 경험의 대상을 탐구합니다. 그래서 경험대상인 자연의 운동에 대한 직간점의 지각경험이 중요하죠. 반면 형식과학은 논리의 일관성과 체계의 정합성만 갖춰지면 성립되는 것이겠죠. 결국 과학교육에서 수학적 기술(description)이 중요하지만 자연의 운동과 구조를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p47

앎의 내용을 기존의 틀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받아들일 바탕 위에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51
교수가 하라는 대로는 잘하는 학생이지만 스스로 자기 논문 안에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적용시키지 못하는 거예요.-p60 => 책에서 배운 지식을 내것化(체화) 하는 능력도 중요한 것이지!!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공유된 바탕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요.-p56
=> 장교수는 물리학이라고 말한다.

실수 체계 자체는 추상적 것. 즉 우리 머릿속에서 만들어 진 거죠. 우리는 마치 실수 체계는 실제 세계에 해당하고, 복소수 특히 허수 체계는 허구 세계에 해당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수 체계도 우리 관념의 소산일 뿐이거든요.p79

머릿속으로만 구성해낸 수학체계가 어떻게 자연의 경험세계를 훌륭하게 설명해낼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정도입니다.-p81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이론이 있으면, 그걸 만든 사람이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원래 논문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적어도 과학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이거야말로 과학의 매력이자 강력한 힘이죠.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중에 본 사람이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이론이 가진 특징을 찾을 수 있어요. -p83
=> 신보다 인간이 인간을 더 이해하고 상생할 수 있는 이유도 … …

아는 것이 많아지면 사유의 폭도 넓어집니다.-p85 단순히 사유의 발전이기보다는 이해의 정도가 깊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p85 ‘관찰의 이론 의존성’을 이야기했잖아요. “발견은 자기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사유 풍토나 이론체계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겠죠.-p85

그 관념의 틀은 더 넓어질 수도 바뀔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때 관찰했던 내용의 해석이 달라지죠.p86
사고의 틀이란 곧 관심이 지향하는 기울기라고 했으면 합니다.-p88
토 마스 쿤의 패러다임 전이 논쟁의 핵심이 그거죠. 쿤의 논쟁을 난 이렇게 이해합니다. 새로운 발견 당시에는 비교가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은 저런 관점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저쪽도 이쪽을 이해 못합니다. 상대방의 사고를 자신이 가진 사고의 틀로 보는 거니까. 시간이 관점이 바뀌거나 사고의 틀이 넓어진 후에는 두 사람이 무엇에 매여서 곰짝 못했는가를 알 수 있어요.-p90

시인은 누적적인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통찰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한다고 하지요.-p94

양자역학에 관해 많이 알려져 있고, 많이 회자되는 게 불확정성 원리입니다. 불확정성원리는 양자역학의 핵심적인 인식론과 연관이 되죠. 불확정성원리라는 말 자체가 일반 사람들한테 큰 호감을 준 것 같습니다. 과학에 대한 기존의 인식은 결정론적이고, 확정적이고, 기계론적이고, 예측 가능한 세계였는데, 불확정성이라는 말이 과학자들 입에서 나온 만큼 딱딱한 세계에 식상했던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놀랍고 반가웠던 거죠.-p107

우선 대상의 현재상태를 알아야 하고, 상태변화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p108

슈뢰딩거방정식이라 불리는 상태변화의 법칙에 넣어 미래 모든 시점에 가질 ‘상태’를 계산해내지요. 그런데 양자역학에서의 ‘상태’는 위치와 운동량의 값들이 아니라 이것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수학적 함수일 뿐입니다. 즉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건 위치와 운동량의 갑 자체가 아니라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함수’일 뿐이에요. p109 …어렵당*_*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는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불확정성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거에요. 이 한계를 하나의 부등식을 통해 정확히 보여주고 있어요.-p110

우리가 이야기할 때 모든 입장이 다르다고 보는 게 좋아요. 틀렸다. 맞았다 하는 건 지식의 절대성이 전제 되어 있는 것입니다.-p119

방금 ‘경험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이 표현은 철학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실재라는 것이 경험에서 만들어진 것이냐, 원래 있었던 것을 찾아내는 것이냐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실재론이 라는 것은 원래 있었던 것을 찾아내는 거죠. 설령 못찾아도 있음 자체, 즉 절대적이고 선험적 객관세계 자체를 인정하는 겁니다. 그 절대적 객관세계를 주관적 감각세계가 ‘바라보고’ 겨우 ‘해석’하는 거겠지요.-p120 => 경제학이 내세우는 가설이 떠오름.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가설.

미래를 완전한 예측을 위하여 현재를 아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p130
=>아이작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틀린 가설로 이뤄낸 SF소설이 되어버린다.*_* 에휴 마지막 3권을 읽어야 되는데 아직도 *_* 못읽었음.

서구과학자들은 여전히 ‘상태’ 개념을 ‘대상’ 개념의 확장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모순으로 비춰집니다.-p134

거꾸로 말하면 양자역학을 담아낼 사고의 틀을 마련할 수 있다면 엄청난 지적 성취이지요. 양자역학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으니 이성이 끝나고 해체됐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더 큰사고의 틀을 만드는 계기라고 봐야 합니다.-p139

생명현상은 공간적 범위와 규모뿐 아니라 시간적 범위와 규모도 중요합니다.-p179

조직에서 세포를 떼어내면서 이미 생세포는 아니고 관찰 목적으로 염색하면서 이미 왜곡된 관찰을 하는 것입니다.-p195

대상의 위치를 잘 보려면 운동량이 잘 안 보이고, 운동량을 잘 보려면 위치가 잘 안 보인다는 것이 상보성원리의 한 사례인데,-p196

사람이 겪는 경험은 크게 ‘대인(對人)경험’과 ‘대물(對物)경험’으로 나눌 수 있어요. 여기에 삶 자체가 주는 대생(對生)경험을 하나 더 보탤 수 있지요.예를 들어 배가 고프다는 경험은 대인경험도 아니고 대물경험도 아닌 대생경험이빈다.-p209

우리 선조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이 사용한 용어를 그들의 시대와 더불어 이해해야 한다.

서양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노자 영역본만 해도 80종 이상이 됩니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들 나름대로 상당한 연구한 결과입니다. 과연 우리는 서양에 대해 그만큼 분석하면서 공부하려고 노력했는가? 단순히 그들을 답습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은 아닌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없었어요.-p238

결국 그 둘을 넘어서는 더 큰 틀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사유의 내용이 아니라 사유의 바탕을 들여다보고 이를 개선해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p238

물리학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문화를 이해하는 거예요.-p243

제대로 ‘눈’을 뜨니까 이용할 길이 보이고 거기서 ‘힘’이 생기는 것지요.-p248 본다는 것에도 두 가지 방식이 있어요. 하나는 부분부분의 미세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체를 조망하는 것입니다.-p248
말하자면 물리학 학습도 모든 부품들을 마련해놓고 조립해가는 자동차 제작과정이 아니라 작은 송아지를 우선 낳아놓고 키워나가는 과정이라는 거지요.-p251

동양과 서양을 마치 전통과 현대, 정신과 물질, 수양론과 과학이라는 이분화의 틀로 구분하는 통속적 접근을 반성해야 한다는 것-p256

‘반성’의 기능이 필요합니다. 최근 인공지능에 순환 알고리즘을 도입해 스스로를 반성하는 로봇이 나왔잖아요. 기존의 논리형 알고르즘으로서는 연산속도가 아무리 빠른 병렬 컴퓨터로서도 로봇 자체의 반응동작을 실현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로봇 인공신경망 기술은 로봇 스스로 방향과 목적을 탐색할 수 있는 새로운 연결주의 알고리즘을 채택하고 있습니다.-p284
=> 프로그래밍 심리학에서 비아적 프로그래밍

양자역학은 대상을 서술하는 입장이에요. 그런데 주체와 대상 사이의 연관이 양자역학의 메타적 구조 속에 들어오기 때문에, 주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해요.-p292

한번 우리말 큰 사전을 들여다보세요. 얼마나 많은 용어들이 들어있습니까? 이것들이 뿔뿔이 다 다르다고 생각하고 이것 하나하나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의 상식이에요. 그런데 진정한 앎은 그게 아닙니다. 이것이 전부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가? 그래서 하나의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게 모여 참된 하나의 삶을 어떻게 이루어나가는가? 이런게 아니겠어요? 누군가는 이 작업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설혹 별로 성취한 것이 없이 빈손으로 뛰쳐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p319

비방이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있을 수가 없지요. 단지 앞뒤 상황을 잘 살펴 내 행동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지, 그러한 결과를 낳는다면 이게 다른 쪽을 희생한 대신 그 만큼의 충분한 보상이 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정도 말할 수 있겠지요.-p326

과학과 철학, 고전과 현대, 전체와 부분, 동양과 서양, 의식과 물질 그 어느 하나 쉽게 만나기 어려운 문제들을 최대한 많이 연결해보려고 나선 길이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최소한 문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논의되었다고 봅니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 자체가 이미 문제해결의 문지방을 반은 넘어선 것이니까요.-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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