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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 각론 중 각론을 언급하는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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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 각론 중 각론을 언급하는 ...

1incompany 2022. 1. 3. 01:40

2022년 1월2일 알릴레오 북's 50회 친절함을 위한 전쟁이란 책을 통해 알았다. 공감의 영역에 공감피로라는 단어가 있음 알았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란 정말 동의되지 않는 수식어의 제목보단 확실히 다름을 인정하고, 거기에 100% 공감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게 되는, 의사인 경우를 예로, 이야기 하던데, 100% 동의했다. 

 

유시민씨는 유튜브의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도네이션 영상을 보다가도 마음속에서 갈등을 느끼고 힘들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 하며, 토론참여하신 교수분에게 물어보고 하는 대목에서 내말이!란 단어를 연결할 수 있었다. 모든 것에 이해와 공감을 해줄수는 없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22NFl_amsA 

 

 

달을 가르키다 손가락의 손톱이 왜 시커멓지!에 몰입해버리는.

왜 구입했냐면 이게 다 코로나19 때문이라하면 이상하겠지?! 두시 잠들기 전에 스트레스를 책 주문으로 풀려고 했나! 굿즈를 중고서점에서 사도 되는데 책과 함께 주문하는 것도 한 취미(?)가 되는 바람에. [이런 취미는 이제 버려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수학이 필요한 순간] 덕(?)에 리커버리 판을 알았고, 설마 이런 분류의 책중에 나와 맞지 않는 책이 있지는 않겠지!가 ... ...

나쁜책이라는게 아니라 나와 맞지 않아 포기했던 책이 이제 세권이 됐다. [산자들]이란 소설과 [벌새]라는 시나리오. 벌새를 반쯤 읽다 많이 답답했고, 산자들은 당사자가 되지 못한 관찰자 시선의 기자체에 소설이 가진 감성이 없는, 이런 이야기는 읽지 않는 것으로 결론내었는데.

이 책의 프롤로그에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차이를 언급하지 않고, 힘도 언급하지 않는 이런 류의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공자의 논어에 다 있는 내용 일꺼다. 사색으로 자신의 앎의 확장이 충분한 시대에 필요했던 사서오경이면 될 내용을 끄집어내고 ... 물론 자기만의 언어로 이야기 한다는데 옆에서 보면 황당그렁했을 뿐. 먹고 삶과 나눔만으로도 힘겨운 나로선 여기까지.

중언부언해 비유해보면, 읽기를 포기한 이유는 0, 1, 2, 3, 4, 5, 로 10까지 샐수 있다면 열하나만 있는 세상에서 소숫점을 가지고 따지기 시작한다는 것에 먹고 살기 힘든 삶에 가식의 세계까지 알아야 하냐는 단순한 질문이었다. 1.1과 1에 대해 크기 비교는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속성 이해 정도는 몰라도 정수와 실수 등등. 세상은 그렇게 벌새에게 많은 상을 주고 그렇더라! 그렇게 언급없이 조용히 입닫고 있을랬는데, 다행히 기생충이 등장했다. 해제를 보지 않아도 그냥 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많은데 굳이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한 영역을.

차별은 좋은가 나쁜가? 차별은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냐는 계급으로 나누어진 현재에 너무나 당연한 것임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와 함께 적용할 수 있는 통일 이론에 몰입하기 보단, 무한하지 않는 내 삶에 내 기쁨과 내 즐거움과 알아도 딱히 도움도 깊이도 만들지 못하는 책을 읽을 시간은 줄이자! (옳은 결론이 아닐지라도  결론을 낸다는 것이 나에겐 중요했다) 롱테일을 알아야 이익이 남는게 아니다. 좋은 것 하다 보니 생존할 수 있는 것 처럼.

이것이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혼란의 중심이라 적어봄.

직접적인 책을 언급한 건 이 책이 싫다는 거다. 틀리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시작에 말했던 달을 가리키는 손에서 달을 보고, 손 모양까지 언급해버리는 시간 많은 세상이 되어버린, 수많은 나무를 베어 만든 책으로는 ... 그러고 보니 내 블로그에 나 자신의 호불을 표명하는데, 객관적일 필요는 없는데, 싫다는 말을 하기 위해 정말 주저했고, 주저리 주저리 했음을. 고맙게도 그런 면에서 언급한 3권은 나 자신에게 주관을 세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인가 싶다?!

(계속 퇴고하는 중)

결정장애란 말로 시작하는  글에 대해 분노한다. 장애란 장애인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장애는 보통상태에서  고장/잘못된/ 상태일 때 말하는 것이다. 시스템 장애를 영어로 하면  system fail/error 이다. 이처럼 다양한 언어, 개개인의 언어세계를 어떻게 공부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건지! '장애'란 단어에 의미가 하나가 아닌 여러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걸 생각지 못하니 도대체가 인간에게서 언어를 뺏고 싶은건지, 사용하지 말자는 것인가!

차별이라니! 차이도 구별하기 힘든데, 어려운데, 차별로 가름해 버리는게 온당한 의견인가!? 남자가 한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을 때도, 여자가 받아들이는 단어의미기 달라질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

거기엔 할머님들의 부음이 이어지는 것도 한 결정했다! 손소장님과 박원순 시장님의 부음도... 선량한 차별이라니, 이게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인게 신기했다! 아니 분노한다. 남자,여자말고 다른 종이 있는지... 음양 말고 음양같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걸 일반적으로 보는 건 아닐텐데... 선량한 차별은 그냥 차이가 있음을 아는 것, 그것으로 나아가면 되는데, 이것이 베스트셀러가 되다니! 세상이 내맘대로 되지 않음은 알고있었지만, 그래서 울분과 분노한다는 문장으로 대신할 뿐이다. 좀더 나가면 역시나 차이를 인정 못하는 편협한 사람이 될까봐! 

장애인을 장애인이라 안 부르면, 그럼 뭐라 불러야 하는건지?... 그럼 장애우란 단어를? 그건 또 아니잖는가!  씨발.


 

2020.05.31 작성. 글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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